게임지와 정품부록, 게임시장

생각하다 2007. 4. 2. 21:14


초등학교 시절. 컴퓨터 게임에 푹 빠져있던 나는 우연찮은 계기로 게임지를 사서 모으게 되었다. 1998 년 8월호 PC CHAMP에서부터 시작해서 2003년까지 햇수로만 6년 정도를 꾸준히 게임지를 모았었다. (6 * 12 면 72권 정도, 실제로는 용돈 수급이 좋지 않아 건너뛴 달도 있어서 실제로는 60여 권 정도가 지금 책꽂이에 모셔져 있다.)

  초창기 게임지를 사던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정품 번들 게임이었다. 처음 PC CHAMP를 구매하던 1998년 8월호에는 로드 오브 렐름 2 가 정품 번들로 제공되었고, 머지 않아 아미맨등의 인기 타이틀이 번들로 제공되었던 적이 있다. 이 정품번들이라는 게 당시 패키지를 구매할 만한 돈이 안되던 나로서는 정말이지쏠쏠한(?) 구매경로가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조금 철지난 게임들만 제공되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쉽게도 소프트맥스의 게임은 절대 번들로 제공되지 않았었다.)

물론 번들에 혹해서 산 게임지지만 기사 역시도 꾸준하게 읽었다. 하드웨어 강좌나 TRPG, 게임계 뉴스 같은 코너는 상당히유익했고, Tip&Hacks(게임의 공략/치트키 등이 실리는 코너)는 매월호마다 스크랩까지 해놓을 정도로, 정말이지빼먹은 적이 없었다.

물론 구매를 결정짓는 것은 번들이 약 40%, 게임 기사가 20%, 애독자로서의 사명감(?) 40% 정도였다.
사실 몇 년 잡지를 구독하면서 정품 번들의 제공에 대해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당시 잘 나가던 PC 게임 잡지들(PCPlayer, PC CHAMP, V챔프 등등)은 모두 정품 번들을 제공하고 있었고, 친구들은 어떤 타이틀이 번들로 제공되는 가를잡지 구매의 중요한 요소로 평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때부터 속물근성에 눈을 뜬 건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PC CHAMP에서 아미맨2가 국내 정식 발매와 동시에 번들로 제공되는 일이 있었다.상당히 신기한 일이었다. 보통 몇 달, 혹은 몇 년 정도 묵어서 잘 팔리지 않는 게임들을 제공하던 것이 번들이었는데 나온지일주일도 안된 게임을 끼워주다니, 뭐 나야 좋은 노릇이지만. (사실 이때쯤해서 게임지의 번들 제공 경쟁이 과열되었던 것으로기억한다.)

그리고 화이트 데이 번들. '국산 게임은 번들로 제공할 계획이 없다'라는 프로포설을 깨버리고 발매한지(비교적) 얼마 지나지 않은 국산 타이틀을 번들로 제공하는 사태를 맞고 나니. "이거 뭔가 좀 이상한데?" 하는 생각을 조금씩갖게 되었다.

본디 번들CD는 데모 버전, 동영상, 평가판 유틸리티, 세이브 파일 등을 끼워넣어 주는 것이관행이었다고 하던데. 언제부터인가 어느 잡지사에서 정품 게임을 번들로 제공하면서부터 치열한 정품 번들 경쟁이 시작되었다고하더라. 결국 이 피 튀기는 전쟁은 제 살을 깎아먹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수많은 게임잡지들이 폐간했고 그시절 잡지사들 중에서그나마 현재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PC Player 하나뿐이다. (그나마 이것도 잡지 두께가 꽤나 얇아졌더라, PCCHAMP = PC PowerZine은 NetPower에 통합되어버리고.)

정품 번들 경쟁은 결국 게임 잡지들의수준 저하를 유발하고, (솔직히 어느 시기부터였던지, 기사들의 수준이 부쩍 수준 미달로 치닫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2001년 전후였을 것이다.) 게임 잡지의 본질을 변질시켜 버렸다. 잡지를 위한 번들이 아닌 번들을 위한 잡지로 은연 중에바뀌어가고 있던 것이다.

초고속 통신망의 보급에 따라 게임을 더욱 쉽게 (그리고 저렴하고 파렴치하게) 구할 수 있는루트가 생기자 염가에 질 좋은 게임을 모토로 내세웠던 게임지(이미 이 시점에서 글러먹은 것)들은 하나 둘 씩 재정적 압박에시달리게 되고, 결국 폐간을 결정하고 만다.

게임지의 번들 제공은 결과적으로 게이머들의 소비 심리를 위축시키고, ( 게임 = 제 돈 쓰고 살 필요 없는 것 ) 게임지의 저널리즘으로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봉쇄해버렸으며, 올바른 비평을 수행할 미디어 저변 부족으로 국내 게임계의 일보후퇴를 불러오지 않았나 싶다. 작금의 사태 -공장제 판박이 같은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는 사태- 역시 올바른 비평 문화나 게임 언론의 질타와 타박이 부족해서는 아닐까.

언뜻 책장의 낡은 잡지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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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게임과 Independancy

생각하다 2007. 3. 29. 16:55

스페이스 워 (1962)

그 오래전 스페이스워(spacewar, 1962년 MIT공과대학)에서부터 지금의 WoW(2004,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근 40여 년에 걸쳐 PC게임은 엄청난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기술적 혁신은 물론이며 게임 이론의 수립 및 대규모 제작 공정의 출현. 정말이지 하나의 산업 분야가 되어버렸지요.

사실 게임 개발은 엄청난 노동집약형 산업입니다. 코드 한 줄, 그래픽 리소스 하나 하나 심지어 미세한 효과음 하나 하나까지 사람 손을 거쳐야 하는 정말이지 사람들의 땀과 노력의 현장이라 할 수 있죠. 이 과정에서는 막대한 자금과 많은 사람들의 노동력이 소비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게임들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죠. 어떤 게임은 잊혀지고 또 어떤 게임은 출시 당일부터 여러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출세가도를 달리게 됩니다. 물론 만들어지는 게임의 대다수는 후자에 속해있습니다.

게임 산업이 노동집약형 산업이면서도 그 결과물로 창출할 수 있는 가치의 산정이 불분명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이것은 흡사 영화 산업과도 유사해 보입니다. 영화계처럼 그들중에는 블록버스터 게임도 있고, 소수만이 즐기는 마이너 게임도 있죠. 그리고 블록버스터 게임들은 필시 제작과정에서부터 엄청난 규모의 인력, 자본이 투입됩니다. (물론 리니지, 뮤 등의 초기 온라인 블록버스터 게임들은 소규모 공정의 산물이라 볼 수 있겠지만, 현 시장의 판도는 그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요.)

블록버스터 게임들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마찬가지로 대규모의 자본이 투입됩니다. 개발인력(자본의 블랙홀)은 물론이며 대규모의 프로모션, 유저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 비용 등등. 어지간한 영화 한 편 만드는 비용 못지 않죠. 이렇게 기회비용이 커지게 되면서 출시되는 게임들은 다들 흥행을 위한 보증수표, 영화 산업에서는 유명 배우나 뻔한 스토리 등으로 통하게 되는 몇몇 클리셰(cliche)를 첨가하게 됩니다. (사실 이 클리셰가 요즘 게임들에선 너무 과하죠?) 익숙한 UI, 혹은 게임진행방식과 같은 형태의 것들 말이죠. 이런 것들은 유저들의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사용자 증
가로 인한 안정적인 수익창출을 가능케합니다. 이것이 바로 '대안게임'의 이점입니다.

WoW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2004)

그러나 그게 전부일 뿐. 결국 과도한 클리셰의 남용으로 인하여 모든 게임들은 서로의 개성을 잃어가고 맙니다. 대안게임은 대안게임에 충실해야지 다른 모습을 가졌다간 수익을 보장할 수 없을 테니까요. 결국 대안게임은 영리를 목적으로 한다는 그 오버그라운드적 특성때문에 자신의 목을 죄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수많은 게임들이 서로 엇비슷한 눈, 코, 입, 목소리를 가지게 되는 것이고 게임계에 발전이 없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솔직히, 그러니까 까놓고 말해서 진보와 혁명은 오버그라운드의 것이 아니죠. 자본의 물을 먹고 몸집이 비대해진 개발사들은 쉽사리 변혁을 시도할 수 없습니다. 시장의 개혁과 혁신이라면 모를까 시대의 개혁과 혁신은 젊은 층. 즉 언더그라운드에서 행해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였습니다.

그렇다면 게임계의 언더그라운드.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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